처음 무역 계약서를 작성했을 때, "FOB Busan"이라는 문구만 넣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이어도 아무런 이견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고, 수출을 위한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됐죠. 그런데 선적을 마친 직후, 바이어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왜 현지 터미널 처리 비용(THC)을 우리에게 넘기나요? FOB라면 그 비용도 귀사 부담 아닌가요?”
계약 조건은 분명히 FOB Busan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에 포함되는 비용 항목과 책임 범위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FOB 조건, 단순하지 않습니다
FOB(Free On Board)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무역 조건 중 하나지만, 실제 실무에서는 많은 오해와 분쟁이 발생하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Incoterms 2020 기준으로 FOB란, 매도인(수출자)이 지정된 선적항에서 물품을 본선에 적재할 때까지의 비용과 위험을 부담한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과정에 어떤 항목까지가 ‘적재 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 내륙 운송비
- 수출 통관비용
- 터미널 핸들링 비용(THC)
- 서류 발급 수수료
이러한 항목 중 어디까지를 매도인이 부담해야 하는지를 계약서에 명확히 하지 않으면, 바이어가 다르게 해석하고 책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 밸브 수출 계약서의 허점
소방용 밸브를 중동으로 수출하는 계약이었습니다. 계약 조건은 "FOB Busan"이었고, 바이어가 제시한 신용장(L/C)에는 "CFR Jebel Ali"가 명시되어 있었죠. 이는 운임을 포함한 조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신용장상 운송 책임은 우리에게 없었지만, 은행은 L/C 조건에 따라 CFR 조건에 부합하는 운송 서류를 요구했고, 우리가 준비한 선하증권(B/L)은 FOB 조건에 맞춰 발급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은행은 서류 불일치(Discrepancy)를 이유로 서류를 리젝트(반송) 했고, 바이어는 서류 재제출을 요구하며 출하일로부터 5일 이상을 지체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류 창고료, 은행 수정 수수료, 신뢰도 저하 등 다양한 손해가 발생했습니다.
FOB 조건의 핵심 리스크 정리
- 비용 항목의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FOB라고 해서 모든 ‘선적 전 비용’을 자동으로 수출자가 부담하는 건 아닙니다. 계약서상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THC나 서류 비용도 분쟁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 다른 서류 조건(L/C, 견적서)과 불일치하면 분쟁 위험
신용장 조건과 인코텀즈 조건이 다르면, 은행이 서류를 리젝트 할 수 있으며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거절될 수 있습니다. - 물류 사고 시 책임 주체가 모호해진다
운송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본선 적재 전"인지 "적재 후"인지에 따라 책임이 다르며, 계약서상 해당 시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큰 분쟁이 됩니다.
실무 팁: FOB 계약 시 반드시 확인할 것
- ✅ FOB + Incoterms 연도를 정확히 명시: 예) FOB Busan, Incoterms 2020
- ✅ 비용 부담 항목 명시: 내륙 운송, 포장, THC 등 각 항목별 부담 주체 명시
- ✅ 신용장 조건과 일치 여부 확인: Incoterms 조건과 서류 조건이 일치해야 리스크 감소
- ✅ 운송 관련 조항 상세화: 선하증권, 운송보험 등의 발급 주체 및 책임 구분
결론: FOB는 시작일 뿐이다
많은 무역 실무자들이 FOB를 ‘기본 조건’ 정도로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FOB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 책임과 비용의 분배에서 매우 민감한 조건입니다. 계약서에 명확한 조항 없이 진행했다간, 본의 아니게 수백만 원의 비용과 수출 신뢰도를 잃게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 클레임 사례를 소개합니다.
QC를 마쳤는데 왜 바이어는 전량 반품을 요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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