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 즉 신용장 거래는 수출자의 대금 회수를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행이 껴 있으니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직접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신용장은 안전할 수는 있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요.
서류는 완벽했는데, 은행은 돈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중동 바이어와 소방용 밸브 수출 계약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조건은 L/C at sight, 즉 일람출급 신용장.
신용장 조건에 따라 서류를 맞추기만 하면 즉시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방식이라 생각했죠.
Invoice, Packing List, B/L, 원산지증명서, 검사 성적서 등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선적 후, 은행에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담당 은행으로부터 받은 통보:
“L/C 조건 불일치로 인해 서류 반송 예정입니다.”
왜?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L/C의 핵심 리스크: 서류 불일치(Discrepancy)
문제는 너무 단순했습니다.
신용장에는 제품명이 "Brass Fire Valve 2.5 inch"로 되어 있었는데, Invoice에는 "Brass Valve 2.5” for fire use"라고 기재되어 있었던 겁니다.
바이어도 알고 있었고, 제품도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신용장 조건과 문자 단위까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신용장은 ‘물품’을 보지 않습니다.
‘서류’만 봅니다.
이 작은 불일치 하나가 수천만 원의 대금 결제를 지연시키고,
바이어에게는 수정장 개설 부담이, 저희에게는 수정 서류 작성 + 항만 창고료 발생 + 신뢰 저하라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신용장이 ‘안전하지 않은’ 순간들
- ✅ 서류 불일치 (Discrepancy)
작은 단어 하나의 차이도 은행은 거절 사유로 삼을 수 있습니다. - ✅ 은행이 반드시 돈을 주는 게 아니다
조건 불일치 시 은행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지어 바이어가 실제 물품을 받아놓고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바이어가 악의적으로 문제 삼을 여지가 있음
서류상의 트집으로 대금 지급을 일부러 지연하거나 협상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 ✅ L/C 수수료 및 수정 비용 발생
개설비, 확인수수료, 통지수수료, 수정비용까지 총 비용 부담이 클 수 있읍니다.
실무 팁: 신용장(L/C)을 진짜 안전하게 만드는 5가지 방법
- ✅ L/C 개설 전, 사전에 초안(Draft) 확인 요청
→ 애매하거나 너무 구체적인 조건은 협의해서 수정 - ✅ 견적서, 계약서, 인보이스, L/C 모두 동일한 용어로 통일
→ 제품명, 수량, 규격, 포장 조건까지 일치시킬 것 - ✅ 서류 작성 시 “스펠링, 단어, 단위”까지 100% 체크
→ 단순 오타도 거절 사유가 됩니다. - ✅ 은행과 소통하며 서류 사전 검토 요청
→ 일부 은행은 서류 사전 검토(Pre-check)를 도와줍니다. - ✅ Discrepancy 발생 시 빠르게 바이어와 수정장 협의
→ Delay가 길어질수록 물류 지연, 비용 증가
결론: 신용장은 안전하지만, ‘정확성의 시험장’이다
신용장은 단순히 ‘대금을 안전하게 받는 장치’가 아니라,
서류 작성 능력과 거래 디테일을 시험하는 무역 실전의 리트머스입니다.
“은행이 있으니 괜찮겠지”가 아니라
“은행이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해야 한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HS 코드 분류 실수로 관세가 뒤바뀐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 제품, 관세 8%일 줄 알았는데 20% 나왔습니다.”
무역 초보자도, 실무자도 꼭 알아야 할 HS 코드 리스크! 기대해주세요.
무역 중급 시리즈
- 1편. 서류 하나 잘못 썼다가 수출이 중단됐습니다 – 밸브 수출 실무자의 실수 노트
- 2편. 계약서에 FOB 썼다고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 밸브 수출 계약의 현실
- 3편. QC 했는데 왜 클레임이 들어왔을까 – 표면 불량으로 인한 수입 거부
- 4편. 통관 단계에서 막힌 밸브 – 수출입 절차의 복병
- 5편. 신용장(L/C), 진짜 안전한가요? – 대금 결제, 서류 불일치, 그리고 신뢰의 균열
- 6편. 이 제품, 관세 8%일 줄 알았는데 20% 나왔습니다 – HS 코드 분류 실수의 대가
- 7편. 이 제품, 해외에서 팔릴까요? – 무료로 할 수 있는 해외시장 조사 실무방법
- 8편. 밸브 수출, 중동과 동남아는 왜 다른가요? – 국가별 인증·기준·문화의 차이
- 9편. 무역 실무에 바로 써먹는 핵심 용어 정리 – 이건 꼭 알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