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용 밸브 1,000개를 선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2중 검사까지 마쳤고, 바이어가 지정한 제3자 검사기관의 프리쉬먼트 인스펙션(Preshipment Inspection) 도 통과했습니다.
서류도 완비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어느 날, 바이어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전량 반품 요청드립니다. 외관 상태가 당사 품질 기준에 미달합니다.”
황당했습니다. 출하 전 제품 외관과 기능 모두 정상이었고, 바이어 승인까지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외관’ 기준의 차이였다
이 제품은 주물(주조) 방식으로 생산된 황동(Brass) 밸브로,
표면에 주물 특유의 거칠기나 주름이 일부 존재하는 건 생산 공정상 불가피한 부분이었습니다.
우리 국내 기준에서는 문제 없는 수준이었고, 바이어가 요청한 도면과 기능 사양서도 모두 충족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어 측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제품이 상업용 대형 시설에 노출 설치되는 용도였기 때문에, 외관도 '소비자 신뢰'와 직결되는 품질 요소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즉, 우리에겐 허용 가능한 생산 특성이
바이어에겐 마케팅 리스크로 인식된 것입니다.
계약서엔 명시되지 않은 ‘심미적 기준’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외관이 나빴다기보다, 계약서나 도면, 기술 사양서에 외관 기준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 기능, 압력, 재질: 명확히 명시됨
- 치수, 연결 방식: 도면과 일치
- 외관: 별도 기준 없음, 사진 첨부도 없음
이로 인해 바이어는 자사 내부 품질 기준에 따라 제품을 평가했고, 우리는 '정상 제품'이라 주장했지만, 계약서상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협상력이 약한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실무자가 진행한 클레임 대응 과정
- 바이어가 보내온 사진 확인
→ 실제 제품 중 일부 표면에 주름, 경계 라인, 산화 자국이 육안으로 확인됨 - 출하 시 보관된 QC 사진과 비교
→ 동일한 외관 상태였고, 사전 동의 없이 변경된 부분 없음 - 제조사와 협의
→ 해당 외관은 생산 공정상 정상 범위이며, 제품 기능엔 이상 없음 확인 - 바이어와 화상 미팅
→ 전량 반품 요청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차기 출하 시 표면 폴리싱 강화 및 일부 단가 인하 제안 → 수용 - 재계약 시 스펙 보완
→ 외관 기준에 대한 조항 추가
→ 샘플 사진 및 외관 기준 범위 별도 명시 또는 한도견본으로 협의
실무 팁: 클레임 사전 예방을 위한 5가지 체크리스트
- ✅ 외관 기준도 계약 조건에 포함하기
- 가능하면 실제 제품 사진 혹은 샘플을 한도 견본으로 제시하세요.
- ✅ QC 후 촬영 자료 보관
- 추후 분쟁 시 증거자료로 활용 가능합ㄴㅣ다.
- ✅ 도면 + 스펙서 외에 “외관 허용 범위” 문구 삽입
- 예: "Casting marks allowed, minor oxidation acceptable, no surface crack permitted"
- ✅ 프리 인스펙션 항목에 외관 포함 명시
- 검사기관에서 외관도 평가하게 만들면 바이어 클레임 방어에 유리합니다.
- ✅ 클레임 발생 시 즉시 대응
- 시간이 지날수록 바이어가 반품/환불을 주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 가능하면 보상 아닌 개선으로 협의를 유도하는게 유리합니다.
결론: 품질은 스펙만이 아니다
무역에서는 ‘기계적 기능만 정상’이면 품질이 보장된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수입자 입장에서는 외관, 포장, 이미지 모두가 품질의 일부로 작용합니다. 특히 소비자와 직접 쟁점이 있는 제품일수록 심미적 품질 기준이 실질적인 구매 결정 요소가 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당연한 것’도 서류로 명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수출입 절차 중 예상치 못한 복병,
“통관 단계에서 막힌 밸브” 사례를 소개합니다.
사양서도 냈고, 인증서도 첨부했는데… 왜 통관이 멈췄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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